9월 - 거룩한 교회
조용한 기도 : 다함께
찬 송 :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기 도 : 맡은이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8장 9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유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유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교회의 두 번째 표지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교회는 거룩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교회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거룩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죄인(罪人)들의 공동체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교회를 거룩하다고 보면서 '거룩한 교회'로 고백하는 것은 모순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의 교회'가 되어야 하듯이, 거룩한 교회가 되어야만 합니다.
전통적으로 '교회의 거룩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교회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는 거룩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즉, 교회의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교회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듯이, 교회도 '죄인들의 공동체'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한 교회'가 된다고 이해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에 따르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현존으로 거룩합니다. 즉, 교회는 죄인을 의롭다고 만드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일하심으로 거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칼뱅도 아우구스티누스와 유사하게, 교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선택된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의 내적 갱신을 통해 거룩하게 되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교회가 거룩한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의 은혜로 거룩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존 웨슬리(John Wesley)는 교회의 거룩성에 대하여 다른 주장을 합니다. 그는 "교회에 관하여"(On the Church)라는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지식이 많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교회는 거룩하다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가장짧고 가장단순하며 또한 유일하게 진실된 이유는 교회는 거룩하다고 불립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에 속해 있는 모든 사람이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그들은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부른 그분이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거룩하다고 주장합니다. 교회의 거룩성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존 웨슬리의 차이점은 교회가 실제로 거룩한가? 그러하지 않은가? 이라면, 공통점은 교회 자체의 능력으로 거룩하지 않고 교회를 부르신분의 거룩성에 근거하여 거룩하다는 점입니다.
참다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20세기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바르트(Karl Barth)는 참다운 신성은 낮아짐에서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계시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은 참다운 신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성육신은 높은 곳에 계시던 성자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낮은곳으로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우리가 깨닫게 되는 점은 참다운 하나님의 모습은 낮아짐에서 만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몰트만은 교회의 표지 중의 하나인 '거룩한 교회'를 해설하면서 교회는 가난에 참여함으로 거룩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비천함과 무력함과 가난과 고난에 참여하는 곳에서 거룩하게 된다. 교회의 영광은 가난의 표적을 통하여 드러난다. ... 교회는 가난과 고난과 억압의 표적을 통하여 이 <사악한 세상> 속에서 거룩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바르트가 참다운 신성은 '낮아짐'을 통하여 드러난다고 주장하듯이, 몰트만은 교회의 거룩성은 교회가 세상의 가난에 참여함으로 드러난다고 주장합니다. 몰트만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의 부유함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었으며, 제자들은 부에 관한 복음을 가난한 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가난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데 바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에 투자할 때 가난하게 된다고 몰트만은 주장합니다.
그러나 몰트만은 교회가 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금에 집중한다면 교회는 아직 가난에 의한 성화(聖化)를 이루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즉, 거룩성을 위한 교회의 가난함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금만을 존중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몰트만은 이렇게 언급합니다. "만일 교회가 <가난한 자들의 교회>가 된다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소망을 교회 안에서 발견한다면 교회는 영적인 그리고 실제적인 의미에서 <가난>하게 될 것이다. 가난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친교로 이끌지 않으면 덕이 아니다."
교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구제금을 넘어서 가난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친교를 나누며 소망을 발견할 수 있는 친교와 소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몰트만은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유하신 분이신데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예수님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부유하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교회의 두 번째 표지는 '거룩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거룩성은 바르트가 주장한 것처럼 고귀하고 높은곳이 아니라 낮은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이 시대 속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교회에서 진정한 친교를 나누며 소망을 발견할 때 교회의 거룩성은 이루어집니다. 존 웨슬리의 주장처럼 교회를 부르신 분이 거룩하심으로 교회는 실제로 거룩하고 거룩해야만 합니다.
✐ 성찰을 위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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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 기도 : 하나님 나라와 정직한 교회와 행복한 가정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침 기도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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